투수가 힘차게 던진 공이 포수의 미트를 빗겨나가 등 뒤로 떼굴떼굴 굴러가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주자들은 이 틈을 타 신나게 다음 베이스로 뛰어가고, 포수는 허겁지겁 공을 주우러 달려간다. 그런데 텔레비전 중계 화면의 자막을 유심히 보면, 겉보기엔 똑같이 '뒤로 빠진 공'인데 어떨 때는 '폭투'라는 글자가 기록되고, 어떨 때는 '포일'이라는 글자가 기록된다. 결과는 똑같이 주자의 진루를 허용한 것인데, 대체 왜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일까? 심판이나 기록원이 대체 어떤 기준으로 다르게 표기를 할까?
이 흥미로운 미스터리의 해답은 야구라는 스포츠의 냉정한 '책임 소재' 가리기에 있다. 야구는 모든 플레이의 결과를 숫자로 기록하는 기록의 스포츠다.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했다면 그 실수의 지분이 투수에게 있는지, 아니면 포수에게 있는지 명확하게 판결을 내려야만 한다.

(출처: https://blog.naver.com/0323lena/220714879478)
먼저 '폭투(Wild Pitch)'는 말 그대로 투수가 공을 너무 '거칠게(Wild)' 던졌다는 뜻이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포수의 키를 훌쩍 넘어가거나, 반대로 땅바닥에 내리꽂혀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궤적으로 날아오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훌륭한 수비 실력을 갖춘 포수라도 평범한 노력으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던 공이다. 이 경우, 공을 뒤로 빠뜨린 1차적인 원인과 책임은 이상한 곳으로 공을 던진 투수에게 있다고 보아 투수의 잘못인 '폭투'로 기록한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출처: https://www.dailysportshankook.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1950)
'포일(Passed Ball)'은 투수가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얌전한 공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포수가 이를 놓쳤을 때 선언된다. 포수가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잃었거나, 투수와 사인이 맞지 않아 엉뚱한 곳으로 미트를 내밀었을 때 주로 발생한다. 즉, 이 실수의 100% 책임은 투수가 아닌 포수에게 있다. 소중하게 잡아내야 할 공을 허무하게 흘려보냈다는 의미에서 한자어로 포일(捕逸, 잡을 포, 잃을 일)이라고 부른다.
이 두 가지의 구분은 단순히 기록상 이름이 다른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 실수로 인해 주자가 홈으로 들어와 실점을 하게 되었을 때, 폭투라면 투수의 평균자책점(방어율)을 깎아먹는 '투수의 뼈아픈 자책점'이 된다. 하지만 포일이라면 포수의 실책으로 인한 실점으로 기록되기에, 수비수의 수비 실수로 인한 실점이므로 투수의 평균자책(자책=자기책임)점 기록에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는 '비자책점'으로 기록된다. 같은 실점이어도 투수의 고과 평가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출처: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9/2020050901403.html)
결국 포수 뒤로 빠져나간 하나의 공 뒤에는 투수와 포수 중 누가 더 큰 실수를 했는지를 따지는 냉정한 법정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야구를 보다가 공이 뒤로 빠지는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면, 곧바로 화면에 뜨는 자막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탐정이 되어보자. 저 공은 투수가 던지기엔 너무 막나갔는지, 아니면 포수가 잡기엔 너무 어설펐는지 판단해 본다면 야구의 숨겨진 디테일이 주는 재미를 훨씬 더 깊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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