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앞에서 뱀처럼 요동치며 휘어지는 마구. 과거 이 공 하나면 심판은 호쾌하게 스트라이크를 외쳤고, 타자들은 넋을 잃고 헛스윙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야구장에 '로봇 심판(ABS,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팔을 아래로 내려 던지는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 투수들이 갑자기 제구력 난조에 시달리며 쩔쩔매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타자를 압도하던 완벽한 스트라이크가 왜 기계 앞에서는 번번이 볼 판정을 받는 것일까? 감정이 없는 로봇이 특정한 투수들을 차별이라도 하는 것일까?
이 의문을 이해하려면 팔을 아래로 내려서 던지는 이(사이드암 투수, 언더핸드 투수)들의 독특한 생존 방식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정통파 투수들보다 구속이 느린 경우가 많다. 대신 공이 타자 앞에서 좌우로 크게 휘어지거나, 밑에서 위로 솟구치듯 날아오는 극단적이고 변화무쌍한 '궤적'으로 타자와 승부한다.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40413042200007)
사람의 눈은 완벽한 카메라가 아니다. 인간 심판은 공이 포수 미트에 꽂히기까지의 잔상과 궤적, 그리고 포수의 절묘한 포구 동작(프레이밍)에 알게 모르게 시각적인 '착시'를 겪는다. 그래서 공이 실제로는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벗어났더라도, 궤적이 워낙 예술적으로 홈플레이트 근처를 훑고 지나가면 본능적으로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리곤 했다. 옆구리 투수들은 바로 이 인간의 뇌가 일으키는 착시를 극대화하는 마술사들이었다.
하지만 경기장에 기계(ABS)가 등장하면서 이들의 화려한 마술은 산산조각이 났다. ABS는 공의 궤적이 얼마나 아름답게 휘어지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출처:https://v.daum.net/v/44IzU6Zvv7)
ABS는 오직 타자의 신체에 맞춰 홈플레이트 위 허공에 설정된 투명한 '3D 직육면체 상자(스트라이크 존)'를 공이 정확하게 관통했는지만 수학적인 좌표로 따진다.
사이드암과 언더핸드 투수들의 크게 휘어지는 공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존을 통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3차원 트래킹 카메라로 궤적을 뜯어보면 ABS 스트라이크 존의 공간을 찰나의 차이로 빗겨 나가는 경우가 많다. 좌우 움직임이 너무 크다 보니 그 좁은 가상의 상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살짝 벗어나 버리는 것이다. 과거에는 심판의 재량으로 일부 애마한 투구가 스트라이크가 되기도 했지만 기계 앞에서는 얄짤없는 '볼'이다.
결국 로봇 심판은 결코 사이드암과 언더핸드 투수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야구장에 만연했던 '착시'라는 환상을 걷어내고 3차원의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과거 인간 심판의 눈을 속였던 궤적이, 판정을 엄밀하게 내리는 로봇 앞에서는 오히려 존을 벗어나기 쉬운 독이 되어버렸다. 다음 경기를 볼 때는 공의 휘어짐에만 감탄하기보다, 홈플레이트 위의 보이지 않는 3D 상자를 상상해 보자. 진짜 스트라이크를 꿰뚫어 보는 투명하고 공정한 로봇의 시선을 당신도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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